스티브 잡스(Steve Jobs | 1955~2011).
21세기를 움직인 혁신의 아이콘.
그는 새로운 미래를 여는 방식으로 아이디어와 예술, 기술을 통합하는 데 달인이었죠. 음악을 듣고 소비하는 방식을 변화시킨 아이팟, 휴대전화를 음악, 사진, 동영상, 이메일, 웹 기기로 전환한 아이폰, 새로운 콘텐츠 제작 산업을 만들어낸 앱 스토어, 태블릿 컴퓨팅의 문을 열고 디지털 신문, 잡지, 책, 동영상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한 아이패드….
잡스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읽어내어 새로운 디지털 미래를 열었고, 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지요.
바로 그 첨단의 상징인 스티브 잡스가 다름 아닌 명상을 했다고 하네요.
애플 초창기 시절, 바쁜 생활 속에서도 집에서 한 시간씩은 명상을 한 다음 출근을 했답니다.
그는 왜 명상을 했을까요?
그가 명상을 통해서 찾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여기서 잠깐! 우선 ‘명상meditation’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간단하게 심리학 용어사전의 설명을 들어보면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아무런 왜곡 없는 순수한 마음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초월이라 하며 이를 실천하려는 것을 명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명상의 종류도 다양하고 그에 따라 명상하는 법도 다른데요. 스티브 잡스가 했던 건 바로 동양의 선(禪) 수행이었습니다.(선(禪)은 불교 수행법의 하나로,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게 하는 정신집중의 수행을 말하지요. 선을 수행 방법으로 하는 선불교에서는, 좌선과 명상 등을 통해 내면의 부처를 발견하고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참조_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Basic 고교생을 위한 윤리 용어사전 / 종교학대사전
‘나는 왜 친부모에게 버림받았을까?’
입양아라는 사실 알고 정신적 방황, 그 후 더욱 영성과 깨달음 추구하게 돼
1955년에 태어난 잡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양부모인 폴과 클라라 잡스 밑에서 자라납니다.
섬세한 성격의 잡스는 열여섯 살 무렵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지요.
생물학적 부모에게 버림받고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그의 정신적 방황은 더 심해집니다.
잡스의 유년 시절인 1960년대 샌프란시스코는 히피와 선 문화의 중심지였지요.
선불교는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지식인, 젊은이들 사이에서 관심을 끌고 있었는데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던 잡스는 자연스럽게 히피의 정신과 문화에 빠져듭니다.
1972년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영성과 깨달음에 관한 책들을 탐독하지요.
인도 그림과 양초, 향, 명상용 방석 등으로 꾸민, 명상실을 마련해 친구들과 명상을 하기도 하는데요.
스티브 잡스는 매일 보이는 일상 저편에 그것들을 초월한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믿었고,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마음에 구멍이 뚫려 있어 그걸 메우려고 애썼던 겁니다.”
스티브 잡스의 대학교 친구 콧키는 그의 끊임없는 깨달음을 향한 추구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지요.
“깨달음을 얻어 나는 누구인지 알고 싶다”
7개월간의 인도 순례 여행 이후 본격적으로 선 수행을 시작하다
1974년, 잡스는 대학을 중퇴하고 7개월간 인도 순례 여행을 떠납니다.
그 순례 여행은 단순한 겉멋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진지한 노력이었지요.
잡스는 그 당시 “깨달음을 얻어 나는 누구인지 파악하고 어떻게 적응하는 게 좋을지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 도취되어 있었다”고 말합니다.인도 순례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본격적으로 로스앨터스 선원(禪院)에서 선 수행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의 삶의 정신적 스승이 된 사람, 코분 치노 선사를 만나지요. 그 후 잡스는 선 수행에 깊이 빠졌고 선은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동양사상과 선불교, 깨달음에 대한 잡스의 관심은 방황하는 청춘이 잠시 보이는 객기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특유의 열성으로 그것을 받아들였고 이후 평생에 걸쳐 동양 사상의 많은 기본 개념을 실천하려고 애썼으며, 결국 자신의 인성 깊은 곳에 뿌리내리게 했지요. 세월이 흐른 후 그는 인도 순례 경험이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렇게 술회합니다.
“인도에서 7개월을 보내고 돌아온 후 저는 서구 사회의 광기와 이성적 사고가 지닌 한계를 목격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마음이 불안하고 산란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잠재우려 애쓰면 더욱더 산란해질 뿐이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마음속 불안의 파도는 점차 잦아들고,
그러면 보다 미묘한 무언가를 감지할 수 있는 여백이 생겨납니다.
바로 이때 우리의 직관이 깨어나기 시작하고 세상을 좀 더 명료하게 바라보며 현재에 보다 충실하게 됩니다.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고 현재의 순간이 한없이 확장되는 게 느껴집니다.
또 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는 밝은 눈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수양이며, 지속적으로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돌아온 이후 선불교는 제 삶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스티브 잡스>(월터 아이작슨)에 나온 이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잡스가 왜 명상을 했는지 이유를 말해줍니다.
“보이는 것 너머의 정신을, 제품에 담아내길 원해요”
내면의 완성을 향한 여정 속에서 눈부신 외적 성취들을 이루어내다
“우주에 충격을 줍시다. 정말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 우주를 뒤흔들어 놓읍시다!”
잡스는 ‘리사’라는 컴퓨터 개발 프로젝트를 출범시키며 이렇게 말했지요.
리사 프로젝트에 이은 매킨토시 프로젝트에서도 잡스의 우주 연설은 계속되었습니다.
“우리는 우주에 흔적을 남기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우주와 내가 서로 연결된 존재이며 둘이 아님을 체험하는 것, 즉 둘이 아닌 하나임을 보는 것을 선이라 합니다. 내가 다른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마음, 오직 나 자신만이 아니라 더 큰 나(다른 존재를 포함한)를 위한 창조는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시작되지요.
선 수행을 통해 이러한 통찰을 하게 되었을 잡스의 평생 목적 또한 이윤이 아니었지요.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열정의 대상은 사람들이 동기에 충만해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영속적인 회사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 밖의 다른 것은 모두 2순위였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재능을 사용해 깊은 감정을 표현하고 이전 시대에 이뤄진 모든 기여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 흐름에 무언가를 추가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나를 이끌어준 원동력이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더 나은 것들로 인해 성장할 수 있도록 최고를 만들기를 원했고, 새로운 창조물을 통해 인류에게 무언가 기여하기를 원했지요. 그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했고, 훌륭한 예술가들과 훌륭한 엔지니어들이 비슷한 사람들이라고 여겼지요. 양쪽 모두 자기를 표현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그는 엔지니어들이 단순히 기술이 아닌 보이는 것 너머의 정신을 제품에 담아내기를 원했습니다.
“매킨토시를 사용해본 사람들은 매킨토시를 정말 사랑합니다. 제품을 사랑한다는 말은 자주 듣지 못하잖아요? 하지만 매킨토시 안에는 굉장히 멋진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저와 같이 일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이 일을 한 것이 그냥 컴퓨터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이 이 일을 한 것은 컴퓨터가 수단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감정을 표현하기 가장 적합한 매체였기 때문이었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감정들이요.”
_ 1995년 인터뷰. <스티브 잡스: 더 로스트 인터뷰>(다큐멘터리 / 2013)에서
잡스는 애플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 이유는 그들의 혁신에 “깊은 인간애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깊은 인간애의 핵심에는 명상을 통한 통찰이 있었습니다.
통찰은 영어로 인사이트‘insight’. 안(in)을 들여다본다(sight)는 뜻으로 내면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지요. 그가 선 수행이라는 명상에 몰두했던 것은 바로 정신의 집중을 통해 직관적으로 경험하는 근원적 지혜,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찾기 위한 내면의 여정이었는데요. 내면의 완성을 향한 여정 속에서 그의 눈부신 외적 성취들이 나왔던 것입니다.
* 이 글은
<스티브 잡스>(월터 아이작슨 | 안진환 역 | 민음사)
<스티브 잡스 iMIND>(김범진 | 이상미디어)
<미친듯이 심플>(켄 시걸 | 김광수 역 | 문학동네)을 참고로 하여 정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