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순 강원대 일본학과 교수
나는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주로 자라났다. 그래서 강원도와는 먼 인연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이곳 춘천에서의 삶이 참으로 감사하기 그지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으로 떠난 유학 생활 약 10년. 이룸 없이는 차라리 삿포로의 어부가 되리라 이를 악물었더니, 인정도 받았고 무사히 학위도 받았고, 또 무사히 가정도 이루었고, 국립대의 교수직도 무사히 얻었다. 그랬더니 남들이 많이 부러워했다.
나도 스스로 인간사의 많은 복을 누리는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근데 그게 솔직히 힘들었다.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삭이고 살았다. 오랜 유학 생활, 하늘의 밝은 해를 제대로 누리며 산책 한 번 하지 않았던 모진 각오에 넘친 삶의 결과 얻어진 것은, 소화력 엉망, 편두통에 시달리는 몸뚱이. 연년생 아이 낳고 뼈 속까지 약해진 뒤의 육아의 피로, 서울에서 춘천으로 매일매일 오가는 출퇴근 기차의 흔들림 속에서 웅크리고 자는 잠은 그저 피로를 가중시켜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랜 세월 잠 한 번을 푹 자보질 못한 삶이었다. 언제나 모든 힘을 다해 열심히 견디고 살았는데, 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걸까, 의문이었다.
그때 만난 것이 마음수련이었다. 우연히 아파트 우편함에 꽂혀있는 안내책자를 보았고, 만일 이것이 내 삶의 피로와 허망함을 조금이라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하고, 지푸라기 잡듯 가르쳐 주는 대로 그냥 마음빼기를 시작해 보았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마어마했다.
나는 사람이라는 존재는 어쩔 수 없이 돈이나 사랑, 명예, 자존심, 인연 이런 것들을 걸머지고 다소의 욕심과 가짐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마음빼기 수련을 하면서 알아버렸다. 진정한 행복과 자유는 이런 것들에 대한 마음을 전부 버렸을 때 얻어지는 것이었음을.
유학 시절 외로워서 다니던 교회에서 주워들은 성경의 구절, 도쿄대학의 인도철학과에서 만났던 세계의 스님들과의 인연으로 주워듣던 불경의 말씀들, 이런 것들이 저절로 해석되어지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진리의 말씀은 진리가 되어 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자료와 책을 읽었던 연구 생활. 그런데 그것이 단지 죽어 있는, 생명 없는 지식을 내 머릿속에 가뜩 사진 찍어놓고, 그것을 나의 지식적 앎의 자부심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충격은 솔직히 컸다. 원통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마음빼기를 계속해 보았다. 그런 마음까지도 다 버려보았다. 일체의 모든 허의 사진이 빠져나간 본성의 자리는 살아있는 지혜 그 자체뿐이었다. 참으로 고귀하고 깨끗하고, 앎을 떠나 있되 세상의 이치를 그냥 아는 자리였다.
나는 이제야 학생들 앞에 서는 것이 자신 있고, 또 진정 학생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줄 수 있게 된 것이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하다. 이제 비로소 한껏 웃을 수 있다. 말해줄 수 있다. 이렇게 살자고.
내 중심의 욕심과 집착의 마음을 벗어나니, 드넓은 세상마음으로 사는 행복과 즐거움이 그지없고, 그 감사함에 가슴이 뛴다.
이제는 누구나 마음빼기를 해야 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진정 그 의미와 뜻을 알고, 진정 행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누구나, 우리 모두,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