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마음여행
제주대학교 중어중문학 몽골 처녀 고미소(사진제공 = 임도경기자)
한국 사람들이 몽골 여행을 꿈꿀 때, 드넓은 초원에서 말을 달리며 자유를 찾는 상상을 하곤 한다.
제주대학교 중어중문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올해 서른 살의 몽골 처녀 고미소씨는 그 ‘자유’를 한국에서 찾았다. 초원에서 말을 달리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마음의 자유다.
4년 전 한국에 정착한 그녀는 무작정 한국이 좋았단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제주도에 반했다. “2007년, 고등학생 때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왔어요. 처음 와본 제주도가 조금도 낯설지 않고 정겨운 거예요. 한국어를 모르는데도 아주머니들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무척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그녀는 제주도에서 살고 싶어서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몽골의 공립대에 다시 들어갔다. 제주도로 교환학생을 보내주는 제도가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그리고 제주도에 정착했고 ‘고미소’라는 예쁜 한국 이름도 지었다.
그러나 직장과 대학원에 다니는 생활은 녹록치 않았단다. 한국인의 분주한 생활 대열에 들어선 그녀에겐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다. 여유가 없는, 빡빡한 일상 속에서 언젠가부터 느껴오던 구속감 같은 걸 느꼈다.
“나를 잃어가는 것 같고, 진정한 나 자신을 찾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몇 년을 살았어요. 무척 답답할 때 예전엔 책 속으로 파고들었죠. 트위터에 ‘나는 나를 어디서 찾을까요?’라고 올린 적도 있어요.”
그 무렵 우연히 한국의 명상을 알게 되었다. 마음수련 명상은 자신을 깊이 돌아보며 살아온 마음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버리는 명상 방법이었고,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깊이 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외국인인 저도 금세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무척 간단하고 체계적이었어요. 그냥 마음을 빼기하는 것밖에 없는데 그 변화도 놀라웠고요.”
공무원인 부모님 슬하에서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그녀였지만 사춘기가 지날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방황이 시작되었다. 부친의 죽음으로 자신의 인생도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고 여겼다. 자신에게 서운하게 대했던 사람들에 대해 큰 원망을 품었고, 그 원망은 시간이 흐르며 미움이 되었다. 자살 시도도 했다. 교회와 절을 다녔던 것도 그 방황과 우울의 늪에서 벗어나도록 주변에서 권해주었기 때문이다.
“명상을 하면서 나를 돌아보니, 항상 나를 피해자라고 생각해왔던 거예요. 이런 마음으로 29년 동안 살았던 거죠. 그걸 마음빼기 하면서 알게 됐어요. 아, 난 나밖에 몰랐구나. 내 마음이 그렇게 한 거구나, 이걸 아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내 탓인 줄을 알게 되니까 다 벗어날 수 있는 거죠. 다 빼고 나서 보니 나는 원래 진짜 나였어요.”
살면서 누군가에게 한 번도 진심으로 사과한 적이 없었다는 그녀는 마음수련을 하고서 비로소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고 한다.
“제가 갑자기 진심으로 내가 잘못했다고 하니까 모두 놀랬죠. 야, 너 뭐 잘못 먹었냐? 하시기도 하구요. 어머니는 “네가 마음수련 명상을 하면서 어떻게 더 변화할지 궁금해 죽겠다”고 하세요. 우리집은 원래 화목한 가정은 아니었는데, 나만 변화한 건데, 집안이 화목해진 거예요.”
그녀는 다섯 살 위 이부자매 언니의 존재도 마음으로 인정하게 됐다고 한다. 친구들에게 이모라고 하며 부끄러운 존재로 여겼던 언니에게 며칠 전 전화로 진심을 전했다고 한다.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언니가 있어서 나는 정말 잘 컸다 말한다.
“직장 동료와 함께 어떤 설문조사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미워하는 사람에 대한 거였어요. 난 미워하는 사람이 없는데 하니까, 친구가 ‘미워하는 사람이 없는 기분은 어떨까’라며 부러워하는 거예요. 그 기분을 저는 알잖아요. 그 행복한 기분이요.”
명상 후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고미소씨는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그 상황에 맞춰서 대처하는 능력이 커졌고, 학업에 대한 목표의식도 뚜렷해졌다”고 한다.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그녀는 한국에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해볼 용기도 갖게 됐다.
“한국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에 대해 귀한 시간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마음빼기 하는 시간은 정말 중요해요. 마음속에 꽉 찬 마음의 사진들을 빼지 않으면 그 귀한 시간들이 소중하게 쓰이질 못하거든요. 빼기를 해야만 진정한 자유를 찾게 돼요.”
마음이 버려지는 게 재미있어 날 새는 줄 모르고 명상을 한 적도 있다는 고미소씨. 그렇게 마음수련 명상을 하고 밖에 나갔을 때 평생 잊지 못할 경험도 했다.
“맨날 가는 길인데 완전 다른 세상인 거예요. 새소리도 처음 들은 것 같았고 제주도에 나무가 이렇게 많았구나, 몇 년 살았으면서 이것도 모르고 살았구나. 나는 빼기만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달라지지! 진짜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세상을 제 눈으로 확인한 거예요.”
몽골 사람들은 한국을 ‘설렁거스(Solongos)’라고 부른다. ‘무지개’라는 뜻이다. 고미소씨는 왜 한국을 무지개의 나라라고 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단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비로소 마음의 자유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 몽골에도 꼭 마음수련 명상을 전해주고 싶다고 한다. 혼자만 행복한 건 의미가 없다는 그녀다.
“이제야 좀 살만한 것 같아요. 힘든 거 빼고 나면 그 공간에 공기가 들어가잖아요. 그걸 숨통이 트인다고 하죠. 이제 제대로 숨을 쉬는 것 같아요.”
마음수련 7단계 중 이제 겨우 3단계를 시작했다는 고미소씨. 그녀가 “앞으로 자신에게 찾아올 변화가 더욱 기대 된다”며 밝게 웃는다.
이재복 · 임도경 기자 jaebok3693@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