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Cover Story] 불행 끝 행복 시작 마음 대청소 프로젝트
속는 셈 치고 딱 일주일만?
부부 되어 떠나는 첫 여행 … 행선지는 `마음`
말도 마세요. 주변에선 난리였어요. 아니, 무슨 신혼여행을 그런 데로 가느냐고 말이죠. 호텔 딸린 리조트도 아니고, 이국적인 정취가 풍기는 유럽의 관광지도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기차를 타고 떠나는 불국사도, 비행기를 타고 가는 한라산도 아니었죠. 저희 부부의 신혼여행지는 말이죠. 아주 특별한 곳이었어요. 대체 어디냐고요? 세상의 어떤 꽃보다 향기롭고, 어떤 바람보다 상쾌하고, 어떤 풍경보다 운치가 넘치는 곳이죠. 바로 내 안에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송영섭 29·염색기술연구소 연구원·대구 중구 남산동
오후 2시 대구에서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저희는 짐을 챙겼습니다. 곧장 자동차를 타고 달렸죠. 가슴이 설레더군요. 옆에 앉은 사람이 ‘여자 친구’에서 ‘아내’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간 곳은 충남 논산의 마음수련교육원이었어요. 마음을 버리고 비우는 곳이죠.
아무리 봐도 특이하다고요? 그건 저희 둘만의 약속이었어요. 결혼 전에도 저는 회사에 다니며 틈틈이 명상을 했습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죠. 마음 공부를 하면서 깨우치게 되더군요. ‘나를 버리고 비운 만큼 상대와 하나가 되는구나’. 그래서 결심했죠. ‘아내와 떠나는 첫 여행, 신혼여행을 의미 있게 보내야겠다’. 조심스레 말을 꺼냈는데 아내도 선뜻 응하더군요. 아니, 저보다 더 반기더군요.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였죠. 차에서 내리자 가슴이 탁 트이더군요. 산에서 내려오는 상쾌한 공기와 빽빽한 소나무 숲, 운치 넘치는 바위 등 저희 부부는 그만 자연 속에 푹 잠기고 말았습니다. 거기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규정상 저희는 각방을 썼어요. 첫날밤에도 말이죠. 솔직히 약간은 아쉬웠죠. 그래도 저희는 그 첫날밤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왜냐고요? 지금껏 살면서 가졌던 숱한 ‘나’를 버렸거든요. 아내와 저, 서로에 대한 사랑이란 감정도 되짚어봤죠. 그게 집착인지, 가짐인지, 욕망인지, 아니면 걸림 없이 강물처럼 흘러가는 자연스러운 감정인지 말이죠. 저희는 프로그램에 따라 버리고,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렸죠. 살면서 가졌던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나씩 떠올려 멀리 멀리 떠나보냈습니다.
놀랍더군요. 실제 버린 만큼 버려진다는 사실이 말이죠. 그리고 비워진 자리는 텅 빈 채로 머무는 게 아니더군요. 어김없이 그 자리에는 놀라운 에너지로 꽉 차더군요. ‘더 많이 비울수록 더 많이 채워진다’. 비로소 그 말의 참뜻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죠. 아내에게 물었어요. “어땠어?” 싱긋이 웃더군요. 그리고 제 손을 잡으며 하는 말. “정말, 고마워.” 저는 알고 있었죠. 그게 무슨 뜻인지. 신혼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 저희는 참 행복했습니다. ‘이젠 싸울 일도 없겠다. 적어도 20년은 부부싸움을 안 하고 살겠구나’. 그런 확신이 들더군요.
<논산>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10년간 20만명 마음수련
심장병·불면증 낫기도
놀랍네요. week&은 직접 그곳을 찾았습니다. 서울에서 2시간30분 남짓 달렸습니다. 충남 논산시 상월면 상도리에는 세련된 현대식 건물이 여러 동 들어서 있네요. 기업체 연수원처럼 깔끔한 분위기입니다. 지금껏 이곳 마음수련교육원에서 마음을 닦은 사람이 20만 명이나 된다네요. 교육청.한국은행.삼성전관.교원연수 등 관공서와 기업체에서도 연수와 강의 요청이 이어진다네요.
사실 week&이 궁금한 건 한 가지였습니다. ‘실제 마음이 버려지는가’였죠. 그래서 지난주 토요일에 들어온 1과정 강의실부터 찾아갔습니다. 조심스레 문을 열었죠. 35명쯤 되는 사람이 눈을 감고 앉아 있더군요. 가부좌를 튼 청년, 두 다리를 쭉 뻗은 아주머니, 오므린 다리에 얼굴을 묻고 있는 할아버지 등 자세와 연령대는 모두 달랐습니다. 대신 표정은 한결같이 진지했죠.
“자, 이번에는 내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그 속에 누가 있습니까? 자, 모든 게 사라지고 아무것도 없습니까? 그 자리에서 1분간 명상하십시오.” 앞에 선 강사의 주문을 따라 사람들은 ‘나 속의 나’를 찾고, 또 버리고 있었습니다. 기억을 버리고, 그 기억에 묻어 있는 감정을 털어내는 수련법이 대단히 구체적이더군요.
쉬는 시간을 기다렸죠. 마음공부를 시작한 지 닷새째가 된 1과정 수련생들을 만났어요. 다니던 병원의 의사 소개로 마음수련교육원을 찾았다는 김정숙(46.여.회사원.대구 남구 대명동)씨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심장이 약해진 상태”라고 합니다. “지금껏 사람들에게 마음을 꼭꼭 닫고 살았죠. 당한 게 너무 많았어요. 여기서 마음을 버리다 보니 그렇게 서럽고 억울한 감정도 팍팍 터져 나가더군요. 눈물이 펑펑 났어요. 그랬더니 미움과 원망이 오히려 미안함과 감사함으로 바뀌더군요. ‘나는 원래 이렇게 걸림 없는 존재였구나’를 알게 되니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김연수(35)씨는 “잠시 귀국했는데 아내의 권유로 마음수련을 하고 있다”며 “마음을 버리면 버릴수록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기분”이라고 말했어요.
정은채(35.여.교사.경남 김해시 외동)씨도 “평생 지고 살았던 묵은 짐을 벗었다”고 합니다. 의사였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가세가 기울었답니다. 혼자 동생 셋의 뒷바라지를 도맡았다고 하네요. 대학생 때도 희생한다는 마음으로 정말 억척같이 살았다네요.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랬어요. ‘나를 희생한다’는 생각을 떨친 적이 없었죠. 그 마음이 쌓이고 쌓여 10년째 불면증에 시달렸어요. 밤잠은 물론 낮잠도 못 잤죠. 그런데 토요일에 여기 들어왔는데 일요일부터 푹 잠을 잤어요. 신기하죠. 그렇게 자 보긴 10년 만이에요. 마음을 버리니까 비로소 보였어요. 준다는 마음도 없이 주는 게 진짜 사랑이더군요. 이젠 그렇게 살 거예요.”
마침 벨이 울리네요. 점심시간이랍니다. week&도 식당으로 내려갔습니다. 메뉴는 비빔밥. 이곳의 반찬은 대부분 친환경 농법으로 직접 키운 것들이라고 하네요. 교육원 측은 “입맛이 까다로운 어르신들도 여기선 식사시간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라고 자랑합니다. 된장과 고추장.김치도 천연재료로 직접 담근다고 합니다.
불과 일주일 만에 살면서 먹었던 마음을 버릴 수 있다니. 참, 묘하네요. 궁금증은 그래도 남습니다. 10년 가까이 마음수련회에 몸담고 있는 황희열(46) 강사를 만났습니다. 질문을 던졌습니다.
-마음이 무엇인가요?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기억입니다.”
-마음을 버린다는 뜻은?
“기억에는 감정이 묻어 있죠. 아픈 기억에는 아픈 감정, 슬픈 기억에는 슬픈 감정, 애절한 기억에는 애절한 감정이 묻어 있죠.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그 기억에서 일체의 감정을 털어내는 게 마음을 버리는 일입니다.”
-버린 뒤에는 어떻게 되나요?
“마음수련을 한 사람들을 만나 보세요. 고통스러운 마음이 사라지고 본래의 마음으로 가게 됩니다. 청정하고 자유로운 본래의 ‘나’를 찾게 되죠. 그때 느끼는 자유로움은 직접 느껴봐야만 압니다.”
-어떻게 일주일 만에 가능한가요?
“마음의 실체를 정확하게 짚어 주기 때문이죠. 그냥 앉아서 ‘마음 버려라’고 주문하는 식이 아닙니다. 한걸음 한걸음 명쾌하게 방법을 일러주기에 버려지는 것이죠.”
-특별한 감각이나 재능이 필요한가요?
“아닙니다. 초등학생부터 할머니.할아버지까지 누구나 합니다. 글자를 모르시는 할머니도 하시고, 대학 강단에 서는 교수님도 하시죠. 학력.성별.나이.종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기에 누구나 비울 수가 있죠.”
-무한경쟁 시대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버리면 나만 손해를 보지 않나요?
“자주 받는 질문입니다. 사람들은 ‘집착=능률’로 생각하죠. 그렇지 않아요. 집착과 욕심을 버리면 마음 없는 열정을 쏟게 되죠. ‘내 입장’이 없어지면 상대 입장을 알게 되고 모든 일에 주인 의식이 생기게 됩니다. 저절로 능률이 오르죠. 스트레스 받지 않고 열심히, 그게 가능해집니다.”
-일주일씩 이곳에 들어와야만 할 수 있나요?
“국내에 60개, 해외에 33개의 지역수련원이 있어요. 모두 24시간 운영됩니다. 직장이나 살림에 얽매인 사람들도 각 지역에서 마음을 닦을 수 있어요.”
week&은 더 많은 얘길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혼 직전까지 갔던 젊은 부부, 100세가 넘으신 할머니, 한때는 ‘극성 엄마, 극성 교사’였던 여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버리고 비웠던 자신들의 마음과 이후 달라진 점을 숨김없이 털어놓았습니다. 어디 한번 들어보실래요?
마음수련원은
1996년 마음수련 교육을 시작한 비영리단체. 국내외에 93개 수련원을 운영하고 있다. 마음수련은 모두 1~8과정으로 구성된다. 방학 때는 교원을 위한 마음수련 직무연수, 청소년 마음수련 캠프, 대학생을 위한 마음수련 캠프도 열린다. www.maum.org
041-731-1114, 1588-7245
▶김낙숙 44·여·초등교사·서울 강남구 대치동
골프채로 아들 매질 → “쉬엄쉬엄 공부해라”
학교에서 저는 ‘화 안 내는 선생님’으로 통해요. 반 아이들이 집에서 그런대요. “엄마는 왜 화를 내? 우리 선생님은 화를 낸 적이 없어. 엄마가 선생님한테 가서 좀 배워 와.” 처음부터 제가 그랬느냐고요? 아뇨, 천만의 말씀이죠. 저는 전형적인 ‘강남 8학군의 극성 엄마’이자 반 아이가 공부만 잘하면 예뻐하던, ‘행복은 성적순’형 교사였죠.
2년 전에 남편의 권유로 마음수련을 시작했어요. 당시 중 3이었던 아들과 저는 최악의 관계였죠. “꼭 1등을 하라”는 주문에 아들은 방문을 ‘꽝!’하고 닫아버리기 일쑤였죠. 속상했죠. 아들의 인생을 위해 한 말인데 몰라주더군요. 나름대로 돌파구가 필요했던 아들은 갈수록 컴퓨터 게임에 중독됐죠. “아예 PC방으로 나가 살라”며 집에서 내쫓기도 여러 번이었죠. 한번은 골프채로 때리기까지 했어요. 관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아시겠죠?
마음을 버리니까 보이더군요. ‘행복은 성적순’은 제가 살아왔던 삶이더군요. 좋은 학교-좋은 직장-멋진 남편-공부 잘하는 아들을 성공한 인생이라고 굳게 믿고 있더군요. 수련을 하다 보니 눈물이 펑펑 났어요. 저는 정말 ‘문제 엄마, 문제 교사’였어요. 마음속으로 아들과 반 아이들을 일일이 불러 사과했어요. ‘미안하다. 선생님이, 이 엄마가 정말 잘못했다’. 그렇게 마음을 버리자 상대 마음이 절로 보이더군요.
요즘은 고 2인 아들에게 “좀 쉬면서 공부하라”고 말해요. 엄마가 변하는 걸 보고 아들도 방학 때 청소년캠프에서 마음수련을 했어요. 수련하고 오더니 컴퓨터는 거들떠보지도 않더군요. 공부는 더 열심히 해요. 교실에서도 제 말투가 바뀌었죠. “이렇게 해!”라는 명령형에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하는 청유형으로 말이죠. 이제 알았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행복은 마음을 비운 순이더군요.
▶김만중 36·치과의사·서울 서대문구 홍은3동
“이혼밖엔 …” → “갈등 푸는 길이 보여요”
어릴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죠. 그래서 집안 형편이 어려웠어요. 저는 늘 열등감에 시달렸죠.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의가 됐지만 치료에 자신이 없었어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려운 경제 사정이 은연중에 영향을 미친 거죠.
치과의사인 아내를 만나 3개월 만에 결혼했죠. 어머니는 반대했죠. 저는 밀어붙였어요. 결혼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라 믿었거든요. 그런데 신혼여행 때부터 문제가 터졌어요. 저는 1남3녀의 외아들이었죠.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는 게 아니다’란 얘기를 어려서부터 들으며 자랐죠. 아내는 달랐죠. 딸만 둘인데 장녀였죠.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고, 처가에선 ‘아들’처럼 키웠죠.
연애할 때 남자들은 ‘어떻게 좀 더 잘해 줄까’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결혼을 하자 저의 보수적인 성향이 불거졌죠. 아내가 밥을 하는 동안 저는 늘 TV만 봤어요. 시집과의 갈등도 커졌죠. 아무리 잘난 아내도 시어머니에겐 ‘늘 부족한 며느리’에 불과했거든요. 아내와 저,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죠. 아내는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웠죠. 이러다 보니 저와 처가의 갈등도 커졌죠. 정말 사는 게 아니었죠. 결국 이혼을 결심했어요.
그때 아는 선배가 ‘마음수련’을 권하더군요. ‘마지막이다. 이래도 안 되면 이혼한다’는 생각으로 휴가를 냈어요. 마음수련원에서 마음을 버렸죠. 홀로 자식 네 명을 키우신 어머니에 대한 부담감,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열세 살이었던 장남이 졌던 마음의 짐, 가슴속에 맺힌 한들을 계속 버렸죠. 1과정을 마치자 알겠더군요. 문제는 아내가 아니라 바로 저였죠.
내 입장을 지우니 절로 상대 입장이 되더군요.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했어요. 아내는 감동받지 않았죠. ‘얼마나 가는지 두고 보자’는 눈치였죠. 그게 6개월 동안 지속됐죠. 고부 관계도 제가 중심을 잡기 시작했죠. 마음을 비우니 대처법이 절로 보이더군요. 결국 아내가 말하더라고요. “나도 마음수련을 하고 싶어.” 환자가 많아 하루도 병원을 비우지 못하던 아내였죠. 추석 연휴를 이용해 마음수련교육원에 들어갔어요. 그 1주가 3주로 돼 버렸죠. ‘마음이 진짜 버려진다. 너무 홀가분하다’며 아내가 계속 기간을 연장했죠. 이제 저희 부부는 ‘잉꼬 부부’가 됐어요. 부부 일심 동체, 마음을 비우면 그건 절로 되더군요.
▶한숙자 105·여·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105세에 웬 수양 ?” → “이런 자유 처음이야”
올해 나이가 몇이냐고? 105세야. 살 만큼 살았지. 그런데 왜 마음공부를 하느냐고? 나도 그런 생각이었어. ‘얼마나 더 산다고 마음을 버리고 비우느냐고’. 그런데 환갑인 막내딸과 사위가 간곡하게 권하더라고. 걔들이 먼저 공부를 했거든. 그래서 논산의 마음수련교육원으로 갔어. 거기서 100년이 넘는 내 삶을 돌아봤지. 그런 경험은 처음이야.
내 고향은 강원도 춘천이야. 그때는 계집아이에게 공부를 안 시키던 시대였어. 15세 때였어. 혼자서 차를 타고 춘천에서 서울까지 왔어. 다짜고짜 인력거를 타고 배화학당을 찾아갔지. 우여곡절 끝에 입학은 했는데 돈이 없었지. 직접 자수를 놓은 걸 팔아 등록금을 마련했어. 집에선 몇 년 뒤 알고서 돈을 보내 줬어. 그렇게 공부했지. 버릴 마음도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자잘한 기억에는 자잘한 감정이, 뼈아픈 기억에는 뼈아픈 감정이 남아 있더군.
배화학당 다닐 때 만세운동이 일어났지. 우리는 학교 동산에 빨래 널러 가는 것처럼 위장해 만세를 부르러 갔어. 그런데 일본 순사들이 와 있더라고. 24명 모두 붙잡혔어. 서대문 감옥 4호에 갇혔지. 고문도 당하고 수감생활도 했어. 재판에서 6개월형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어. 그때 유관순 얘길 들었지. 감옥에서 죽었다고. 그런데 무서워 아무도 가보지 못했어. 부끄럽고 창피했어. 그런 미안함과 죄책감이 오랜 세월 내 마음에 박혀 있더라고. 돌아보니 그것도 큰 짐이었어.
마음수련은 참 정확해. 버리고, 버리고, 버리다 보면 질긴 덩어리만 남지. 가슴에 담은 채 죽을 줄 알았던 마음들이지. 그것도 결국 버려지더라고.
나는 2남3녀를 두었는데 딸 하나는 먼저 죽었어. 또 둘째 아들은 한국전쟁 때 납북됐어. 한순간도 놓을 수 없었던 내 삶의 한이고 아쉬움이지.그걸 버렸어. 처음에는 튕겨 나오더군. 던졌는데 안 들어가는 거야. 그만큼 상처가 컸던 거지. 버리고, 버리고, 버렸지. 그런데 어느 순간 ‘쑤~욱!’하고 빠져나가더라고.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리더군. 내 평생 그런 자유는 처음 느꼈어. 그제야 깨달았지. ‘서대문 감옥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마음의 감옥이구나. 8.15 광복보다 더 시원한 것이 내 마음에서 해방된 거구나.’
이젠 죽는 게 두렵지 않아. 집착과 아쉬움을 놓으니 죽음도 ‘순리’가 되더군. 이젠 그냥 행복해. 모든 게 고마울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