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 동갑내기 친구가 있습니다.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의 문도 열게 되었지요. 사람을 잘 믿지 않는 저였지만 그 친구에게만은 확신이 들었습니다. 말할 때 거부당한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거든요. 누군가와 이야기하다가 “그건 아니지”란 말만 들어도 부정적인 저는 외면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정말 있는 그대로 제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작은 일상부터 깊은 상처로 남아 있는 고통스런 이야기까지….
“너는 왜 다 들어주노, 왜 늘 내 편을 들어주노?”
“딸만 넷이었던 엄마는 아들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지. 이번엔 틀림없이 아들이라는 점쟁이의 말을 철떡같이 믿었는데, 다섯째도 또 딸이었어. 그게 바로 나야. 딸만 낳은 엄마의 설움이 얼마나 컸던지, 초등학교 1학년 어느 겨울밤, 내 입술에 ‘머릿니’라는 농약을 발랐다고 했어. 동네 아주머니들한테 말하는 걸 우연히 들었지. 엄마는 우스갯소리처럼 했지만 굉장히 슬펐던 기억이 나. 그 후로 부모님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고 늘 싹싹하게 대하며 지냈어. 하지만 그 상처로 인해 ‘난 벌레만도 못한 사람’이란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애. 너무 힘들었어.”
어느 날은 펑펑 울기도 하면서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말하는 저 자신조차 지겨울 만큼 말이지요. 그럼에도 그 친구는 4년이란 긴 시간 동안 한결같이 들어주었습니다. 저 역시 그 친구 앞에서는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 응어리진 말들이 쏟아졌습니다.
귀기울여 들여주되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던 첫번째 친구
늘 따뜻한 차를 대접해주었고, 잘하고 있다는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남편, 아이, 돈 문제…. 어떤 얘기를 해도 끝까지 귀 기울여주되,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물었습니다. “너는 왜 다 들어주노, 왜 늘 내 편을 들어주노?”
친구는 “네가 얘기하면서 답도 다 말하던데… 니가 다 했잖아” 하며 웃어주었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는 친구가 고마웠습니다. 저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고, 가슴속에 묻어둔 말들을 털어놓으면서 스스로 해답도 찾게 되었지요.
너무 살기 힘들어서 그러셨구나,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었고, 평상시 융통성이 없다고 답답하게만 여겼던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친구가 무조건 내 얘기를 듣고 받아주었듯이, 남편도 그런 걸 느껴보고 싶지 않았을까. 한순간이라도 마누라가 무조건 내 편이란 걸 느꼈을 때 남편도 힘이 나지 않을까…. 친구가 한다는 마음수련이 어떤 것인지 해보고 싶어졌고 저도 수련을 하게 되었어요.
친구처럼 마음수련이라는 걸 해보고 싶었습니다
내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동안 저는 내가 경험하고 생각한 것만 옳다고 믿어왔고, 그렇지 않은 건 부정하고 있었어요.
그 겨울, 한 번의 기억으로 부모님과 가족, 주위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포기한 겁니다. 힘든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해 본 적도 없었고, 늘 열등감에 휩싸여, “엄마 때문에 아무것도 못 했어” 핑계를 대면서 게으른 나를 합리화하고 있었어요. 상대방의 모습도, 말도 내 맘대로 해석하고, 오해하니 힘들게 살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소홀히 한 것이 참회가 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왜 그렇게 잘 들어주었는지도 알게 되었어요. 그 친구는 마음을 버렸기에, 선입견이 없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그냥 인정해 줄 수 있었던 거였습니다. 그만큼 마음의 공간이 큰 친구였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저도 남편과 아이들에게 그 친구같이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고마워, 옥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