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육남매 중 선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이자 막둥이로 태어나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유복하게 자랐다. 그런데도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였다.
혼자 있는 것을 너무나 싫어해서 식구들이 다 나가버리면 무섭고 불안해 따라간다고 떼쓰다 많이 혼이 나곤 했다.
학교 다닐 때도 매 학년마다 어디를 가도 꼭 붙어 다니는 단짝이 늘 있었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사람들이 처음엔 호감을 가졌다가도 집착하는 데 질려 할 정도였다.
그런 나였지만 12년 동안 한결같이 바라봐주던 동갑내기 친구랑 결혼을 해서 두 딸도 낳고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았다.
아니 사는 듯했다.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탔던 아이
육군 장교였던 남편 직업의 특성상 이사를 자주 다녀야 했다.
보통 사람들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을 터인데, 나에게는 오죽했을까. 자주 바뀌는 환경에 내가 견뎌야 할 무게감은 엄청났다.
가슴은 구멍이 뚫린 것마냥 늘 시리고 허기졌다.
그 빈 가슴을 부여잡고 전전긍긍 사느라 누구를 위해 마음을 써주고 할 여유도 없었다. 내 나름의 틀을 만들어놓고 남편과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거기에서 벗어나면 못 견뎌했다.
마음수련 명상을 시작하고 한 달쯤 됐을까 큰애가 그랬다.
‘천국에 사는 것 같다’고.
그동안 얼마나 사랑하는 가족들을 지옥에 살게 했는지를 알고 반성했다. 늘 세상에 나만의 잣대를 들이댔고 내게 맞추어지지 않는 것들에 불만이 많았는데, 나 하나 바뀌니 모든 게 만사형통이었다.
마음수련을 시작한 것은, 남편이 제대를 하고 부산에 정착하게 되면서였다. 나도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직장동료로부터 마음수련을 권유받은 것이다.
당시 굉장히 일에 집중해야 될 때였지만, 먼저 마음을 비우고 정리하고 나면 일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수련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수련을 통해, 근본적인 외로움과 소외되는 것을 못 견뎌하는 성향의 원인이 나의 출생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로움도 소외감도, 본래의 나에겐 없는 것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다. 만삭이었던 엄마에게 복막염이 와서 집에서는 굿을 해야 했고, 그 시절 드물게도 난 병원에서 태어났다.
태어났지만 울지 않는 아기는 죽은 줄 알고 덮어두고, 사람들은 엄마를 살리기에 급급했단다.
그러다 나중에 가녀린 숨 줄기를 잡고 위태위태하게 겨우 살아난 게 나란다.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이것이 그 원인인 줄은 몰랐다.
막 태어나 다른 환경에 놓인 것도 두려웠을 텐데 무관심으로 소외되었던 그 느낌을, 신생아는 세포 하나하나 깊숙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나 자신이 이해가 되었고 무엇보다 내 잘못이 아닌 어떤 환경으로 인하여 형성된 무엇인가에 의해 평생을 그렇게 힘들게 살았다는 것에 몸서리가 쳐졌다.
그리고 현재의 행복을 위해 그 오래 가둬두었던 마음들을 비워나가기를 계속했다.
그렇게 수련이 진행되면서 엄마에 대한 원망은 엄마는 아프고 싶었겠나 하는 이해로, 막둥이를 당신 몸 아파 돌보지 못한 엄마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하는 용서로, 그렇게 서서히 치유가 되어갔다.
마음수련의 모든 과정을 마친 지금, 태어나고 자라면서 겪게 되는 환경이 만들어낸 내가 아니라 본래의 내 모습을 찾아 살고 있다.
본래의 나에게 외로움이나 소외감은 없었던 것이다. 텅 비었던 가슴속이 행복감으로 차오른다.
행복하고 여유가 있으니, 내 입장을 내세우기보다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고 배려하게 되고 세상 이치도 다 이해가 된다. 이것이야말로 모두가 그토록 추구하고 바라던 완성된 삶이 아닌가 싶다.
하라감 님은 1958년 부산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1984년 오랜 친구이자 직업군인인 남편과 결혼, 슬하에 2녀를 두고 편안한 결혼생활을 하였습니다. 2007년 지인의 소개로 마음수련을 시작하게 된 님은 외로움과 평소 예민했던 성격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으며, 현재는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짜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