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가 교사가 되었다! 2003년 임용고시 최종합격자 명단에 나의 이름이 올라온 것을 확인했을 때의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몇 년간 고생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참다운 교사가 되자! 아이들을 이해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의 교사가 되자’라는 큰 포부를 안고 나는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충격과 실망으로 보냈던 초보 교사로서의 첫 해
처음 근무한 중학교의 반 아이들. 초반엔 아이들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의 생일을 챙겨주고 메일을 주고받고 상담을 하고, 나의 반 아이들이 있다는 게 마냥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변해가는 듯했다. 담임인 나의 지도에도 불응하고 야단을 치면 무례하고 버릇없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초보선생이라는 것을 알고 만만히 봐서 그러는 것이라 생각했다.
엄하게 하면 할수록 아이들은 더욱 엇나갔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갔다. 교직생활 평생을 보내면서도 다 겪지 못할 정도의 시련을 이 한 해 동안 다 겪었다고 느낄 정도였다. 충격적인 일들로 인해 계속해서 좌절하고 자책하며 눈물로 보냈다. 교직 경험이 부족한 원인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내 스스로가 큰마음으로 그 아이들을 포용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컸다.
그럴 때 마음수련을 알게 되었고 그해 겨울에 교원연수에 참가해서 수련을 시작했다. 내가 살아왔던 삶을 떠올렸을 때,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었다. 하지만 중학교 때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았던 일, 교직생활 첫해에 아이들에게 무시당하고 욕을 먹었던 갖가지 속상한 일들이 떠오르니까 서럽고 억울하단 생각에 눈물이 쏟아졌다.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심에 아이들만 탓했던 속 좁은 선생
반복해서 버리니 밑바닥의 마음이 드러났다. 모든 아이들에게 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 학생들이 다 나를 좋아해주길 바랐는데 안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실망하고, 아이들을 혐오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그 모든 일은 다 내가 자초한 것이었다. 항상 내가 다른 사람보다 뭐든지 더 잘하고 인정받아야 하고 관심을 받아야 한다는 자존심이 마음 밑바닥에 있었다.
거짓마음들을 하나 둘씩 비워내면서 무겁고 아프기만 하던 어깨의 통증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모두 가벼워졌다. 우주와 같이 넓고 큰 마음이 나의 본성인데, 그것도 모른 채 힘들게 보냈던 세월이 아쉽기도 했다.
교직생활 일년 동안 그 많은 시련을 겪지 않았다면 이 좋은 수련을 못했을지도 모르고, 이런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감사한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는 교직 5년차의 교사가 되었다. 여전히 실수투성이지만 주변 선생님들로부터 에너지가 넘쳐흐른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예전 같으면 매주 일요일마다 다음 날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무겁고 답답해졌을 텐데, 요즘엔 마음이 항상 편안하다.
180도 바뀐 교직생활, 아이들을 마음으로 이해하는 선생이 되다
일요일 밤도, 월요일 하루도,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있을 때도 즐겁고 행복하다. 예전 같으면 학생들의 잘못된 행동을 보면 내 분풀이 차원에서 감정적으로 야단을 쳤을 텐데, 이제는 진심으로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에서 지도를 하게 된다. ‘불량학생’이다, ‘날라리’다, 하며 분별 짓고 약간의 적개심을 가지고 대했던 마음도 이제는 있는 그대로 보게 되고 받아들여지니 참으로 신기했다. 집에서도 짜증 내고 고집 부리고 함부로 말하던 막내딸이 가족들을 항상 웃는 낯으로 대하니 무척 신기해했다.
어떤 상황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게 되고, 만약 그렇지 못했다 싶을 때는 상대가 학생이라도 미안하다고 정중하게 사과하게 된다. 잡념이 없어져 일에 대한 집중력도 생기고 성취도도 높아졌다. 자신감도 생겼다. 아이들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끌어안을 수 있는 교사로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에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는 요즘이다. 오늘도 난 이렇게 나 자신에게 외친다. “모든 일은 마음 버리기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