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수 소방관. 그가 하는 일은 화재, 교통사고, 산악 사고 등 각종 위급 상황이 발생할 때 출동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직업의 특성상 참혹한 사고 현장을 목격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겪는 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받아야만 했다. 마음빼기를 하며 비로소 그 기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장학수 소방관. 하지만 “이제 그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출동벨이 울리면 드는 두려운 마음
“뻐꾹뻐꾹~” 출동벨이 울리면 자동적으로 몸이 무조건 달립니다. 빨리 구급차량을 타고 현장으로 출동해야 하니까요. 처음엔 출동에 대한 부담감이 컸어요. 언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모르는 긴장의 연속인 데다, 인명 구조는 시간이 곧 생명이니까요. 하지만 귀중한 생명을 구했을 때의 뿌듯함과 보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죠.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각종 사고 현장에서 보게 되는 처참한 광경이에요. 제가 처음 죽음을 접했던 건 교통사고 현장이었죠. 중년 여성의 운구를 이송했었는데 뇌리에 오랫동안 남더라고요. 2005년 응급구조사 자격증을 따고 본격적으로 응급구조 업무를 하면서는 더했죠. 추락사, 자살, 교통사고 등 각종 사건 사고들을 접하다 보니 어느새 장면 장면이 진하게 각인이 되더라고요.
일하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르고 꿈에도 나타나고 가위눌림도 당하고…. 예전에 일어났던 사건과 유사한 현장에 가게 되면 그 기억이 다시 떠오르니까 참 많이 괴로웠죠. ‘제발 이런 걸 안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굴뚝같았어요. 정말 이직을 하고 싶을 정도였죠.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2002년엔 청양에서 큰 산불이 났었는데, 예산 지역까지 퍼질 정도로 굉장했죠. 산 중턱에 암자가 있어서 불을 끄러 갔다가 순식간에 불에 포위돼서 죽을 뻔한 적이 있었어요. 다행히 소방 헬기가 와서 불을 끄는 바람에 살아날 수 있었죠. 그런 사건들을 겪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출동벨이 울리면 두려운 마음부터 들더라고요.
나를 괴롭히던 기억들, 나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하다
2007년 청양파출소에서 3년간 혼자 근무하면서는 우울증까지 찾아왔어요. 불이 나면 소방차 끌고 가서 끄고, 환자 생기면 구급차 끌고 가서 병원에 후송하고…. 교대할 때만 사람을 볼 뿐 혼자이다 보니 ‘단 한 사람이라도 누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어요. 외로움과 두려움, 매사 의욕도 없어지면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회의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 무렵 마음수련에 대해 알게 됐죠. ‘진짜 마음을 비울 수 있을까?’ 싶었지만, 시시때때로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이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거기서 빠져나왔으면 좋겠다, 그 방법을 간절히 찾던 중이라 바로 논산에 있는 메인센터에 갔습니다.
처음엔 기억을 떠올려 버린다는 게 힘들더군요. 특히 죽음과 관련된 사진을 버릴 때는 그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했습니다. 나중엔 ‘어디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하면서 오기 반 간절함 반으로 버려나가 봤어요. 그러다 보니 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유독히도 컸는지 알게 됐죠.
어릴 적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에서 장례를 치르는데 염하는 과정 등을 고스란히 뒷문을 통해서 다 보고 있는 아이. 무서워서 방에도 들어가지 못했던 기억. 그런 산 삶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저장돼 내 마음을 조종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더욱 열심히 수련했어요. 그랬더니 어느 순간 ‘아, 이 모든 것이 다 없는 허상이구나’ 하는 걸 마음으로 깨치게 되었습니다.
수면 장애 사라지며 머리만 대면 푹 자게 돼
그때부터는 정말 잘 버려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신기한 건 수련한 지 3일이 지났을 뿐인데, 머리만 대면 바로 잠이 든다는 거예요. 수면 장애가 있어서 잠 한번 자려면 한 시간 이상 뒤척이면서 실랑이를 벌여야 했거든요. 자다가도 3~4번씩 깨니까 늘 피곤했는데, 잠을 푹 자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그렇게 수련하던 어느 순간, 묵직하게 막혀 있던 게 뻥 뚫리리더니,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가득 차 있는 충만함이 느껴지면서 우주가 본래 나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마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 갇혀 있다가 한줄기 빛을 만난 듯, 그동안 풀지 못한 숙제가 확 풀리는 기분이었으니까요.
사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을 하다 보니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과 다를 바 없구나 싶어 늘 허무했거든요. 과연 산다는 게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수련을 통해 깨닫게 된 거죠. 이 몸이 사는 게 아니라, 우주와 하나가 된, 그 정신으로 영원히 사는 것이야말로 진짜 삶이라는 걸….
두려움 없는 일상, ‘외상 후 스트레스’를 이겨내다
꾸준히 수련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제가 바뀌어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우선 출동에 대한 두려움들이 조금씩 사라지더라고요. 일할 수 있음이 감사하고, 그 일이 또한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일임이 감사하고,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어서 감사하고…. 매사 긍정적이 되고, ‘이 일이 천직이구나, 내가 있어야 될 곳이구나’ 하면서 마음자세가 바뀌는 거예요.
무엇보다 좋았던 건 나를 괴롭혔던 그 참담한 기억들의 끄달림에서 벗어났다는 겁니다. 예전엔 늘 회피하고 싶었던 현장이었는데, 각종 사건 사고를 담담하게 처리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놀라기도 합니다. 그렇게 마음의 평온을 찾으니까 하루에 10건 이상씩 사고 처리를 해도 피곤한 줄을 모르겠어요. 그때 진정한 휴식은 마음에 있다는 걸 깨달았지요.
소방관, 경찰관 등은 다른 직종에 비해 외상 후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밝아 보여도 눌러놓고 지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이런 직종의 분들은 특히 마음수련을 했으면 좋겠어요. 집을 새롭게 리모델링하듯이, 우리의 마음도 한 번쯤 싹 리모델링 하는 거죠. 그렇게 힘든 마음들 털어내고, 무거운 기억들을 빼내고 나면 새롭게 편안하게 살 수 있으니까요.
요즘은 출동벨이 울리면 그냥 몸이 뛰어나가지, 어떤 번뇌도 생각도 없어요. “가자! 빨리 가자!” 하고, 오직 내가 필요한 그곳을 향해 힘차게 출동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