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뻔한 인생 코스. 늘 ‘특별한 삶’ 희망했으나, 치과의로 종합병원에서, 또 병원을 개업하며, 그 속에서 나는 내 인생이 너무 평범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럭저럭 돈을 벌어서 건물 하나 지어서 아래층은 세 주고 위층은 병원과 집으로 사용하면 어언 육십이 될 것이다. 너무도 뻔한 내 인생이 싫었고 무언가 다른 인생을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어떻게 사는 게 다른 삶이고 특별한 건지 도무지 알지 못했다.
특별한 삶 원했지만 늘 불안하고 부족한 마음
기껏 하는 것이, 매일 밤 테니스에 빠져 사는 게 전부였다. 어쩌다 보니 결혼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의 소개로 마음수련을 하게 되었다. 수련을 하며 마음수련 방법은 노벨상을 타도 부족하다 싶었다. 마음을 하나씩 버려 나가면서 가슴이 후련하고 시원했기 때문이다.
난 자존심이 세고, 고집도 세고, 집착도 많았다. 남들보다 더 나아야 했다. 그래서 참 많은 것에 연연했다. 주위의 다른 병원과 비교하며 나를 채찍질하고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 여러 세미나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그것도 모자라 해외까지 다니곤 했다.
환자가 없으면 없는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늘 불안했고 뭔가 항상 부족한 것 같았다. 병원 개업 후 체중도 점차 빠져서 보기가 흉할 정도였다.
그런데 신기하리만치 나를 힘들게 하던 그런 마음들이 잘 버려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이런 방법을 어떻게 개발했는지, 이 방법을 창안한 사람에게 노벨상이나 그 어떤 상을 줘도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걱정 불안 없이 살게 되었으니, 이게 바로 특별한 삶
지금 참 즐겁고 행복하다. 우리 병원에는 나와 세 명의 직원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수련하고 돌아와 난 제일 먼저 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원 휴지통을 비우고, 청소를 함께 했다. 예전에는 그런 일은 당연히 직원들이 하는 것인 줄 알았다. 사람을 불러서 하던 힘든 일들도, 웬만한 것은 내가 했다. 직원들과 밥을 같이 먹고, 원장실도 쓰고 싶을 때 얼마든지 쓰라고 개방을 했다.
상하관계가 아니라, 동료로서 스스럼없이 지내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 분위기가 좋아지고 예전과 달리, 환자들도 병원에 오면 왠지 모르게 안정돼 있고 편안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환자들을 대할 때도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인연이니 최선을 다해서 진료를 해야겠구나,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어려운 수술은, 못해서가 아니라 귀찮아서 안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시간이 아무리 많이 걸려도 하게 된다. 또 전에는 아이들을 진료하지 않았다. 어린아이들은 치료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보살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똑같이 대하게 된다. 평소 잡생각이 많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미리 계획하고 걱정했다.
또 작은 실수에도, 왜 그랬을까, 다음에 어떡하면 될까 하며 연연했다. 요즘은 거의 잡생각이 없고 걱정을 미리 사서 하지 않는다. 내가 봐도 신기할 정도다. 스트레스도 거의 받지 않고, 마음 편히 살아가기에 당연히 몸도 더 좋아지고 살도 붙어, 전보다 훨씬 더 보기 좋은 체형을 유지하고 있다.
주위에서도 얼굴이 많이 좋아지고 나날이 젊어진다고 한다. 30대 초반인 것 같다는 말도 많이 듣는데, 아직 결혼을 못해서 그런지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