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때 알게 된 친구 지훈이는 뭘 해도 어색하고 허술한 아이였다. 그런데 시험 때만 되면 ‘반전!’.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여 반 1, 2등을 다투는 데다, 전국 수학, 과학 경시대회에서 상을 휩쓸어 반 아이들의 부러움과 시샘을 한 몸에 받았다. 일일이 머리로 이해하고,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비로소 수긍하는 냉철함, 친구들이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면 ‘어떻게 이런 걸 모르냐’며 염장을 지르는 아이.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 ‘그래, 너 잘났다’는 소리를 듣는 그런 친구였다.
저 깐깐한 놈이 명상을 한다고??
대학 2학년 때쯤 지훈이에게서 변화가 느껴졌다. 고등학교 때는 늘 신경이 곤두서 있고 건강도 안 좋았는데, 왠지 편안하고 부드러워진 데다, 심지어 밥도 사주고 옷도 챙겨주는 다정함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어? 얘가 이렇게 따뜻한 놈이 아니었는데…?’ 가장 의아했던 것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만 믿고 따르던 녀석이 명상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내가 알고 있는 게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진지하게 털어놓는 지훈이의 마음 이야기는 정말 신기하기만 했다.
그 후 나는 지훈이에게 상담하는 일이 잦아졌다. 제대 후에 뭘 할지 몰라 힘들어할 때도 지훈이를 찾아가 말했다. 어릴 적 부모님한테 심하게 혼났던 기억 때문인지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을 잘 못하는데 이런 모습을 버리고 싶다고.
그때, 확실하지 않은 건 절대 권하지 않는 김지훈이 추천한 것이 바로 마음수련이었다.
마음 버리는 방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
너무 괴로웠기에 마음을 버리는 방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고 그만큼 열심히 했다. 그리고 2~3일 만에 힘든 마음이 버려졌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지금까지 참 빡빡하게 살았던 인생. 어떻게든지 내 의지대로 조건 환경을 바꾸려고 했지만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이 무한한 세상 속에서 ‘나’라는 미미한 존재가 칠팔 십 인생을 자기 뜻대로 해보려고 홀로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었던 거다.
수련을 하면서 주눅 잘 들고 소심한 면, 잡념들을 버리다 보니 세상의 상황을 수용하고 그것에 온전히 힘을 다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갔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지훈이는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또 즐기면서 집중했기에 결정적인 순간에 능력을 발휘했던 아이였는데 ‘쟤는 맨날 머리 믿고 놀기만 한다’고 시기 질투 하고 부러워하기만 했었다. 부끄럽다. 미안하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