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씨는 촉망받는 실력파 오보에 연주자다. 독일에서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와 여러 오케스트라의 객원 수석 및 실내악 연주에 참여하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과 경북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시절의 지도교수 이윤정(현 경희대 교수)씨는 그녀에 대해 “음악성이 뛰어나다. 무엇보다 뛰어난 건 늘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흔들리는 게 없다는 것이다”라고 평했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이 그렇게 한결같을 수 있었던 것은 진정으로 마음을 비우는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끊임 없는 경쟁의 연속, 행복한 적 없던 음악 인생
오보에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할 때 첫 음을 맞추는 역할을 해요. 연주를 시작하기에 앞서 오보에가 ‘라’ 음을 불면 거기에 맞춰, 다른 악기들이 음을 맞춰요. ‘라’ 음을 부는 소리만 들어도 그 오보에 주자가 얼마나 잘하는지 알 수 있어요. 오보에의 음이 잘못되면 악단 모두가 틀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엄청 긴장하게 되지요. 사실 음악 인생이라는 게 겉으로는 우아해 보이지만 끊임없는 경쟁의 연속입니다. 입시 경쟁, 끊임없는 시험, 오디션….
저는 어릴 적부터 항상 음악과 함께해 왔어요. 어머니가 피아노를 전공하셨기 때문에 집 안에서는 항상 피아노 소리에, 집 밖에서는 오케스트라 연주, 악기별 독주 등 클래식 연주회를 많이 데리고 다니셨죠. 이런 환경에서 어머니는 당연히 딸도 음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죠. 처음에는 피아노, 그 다음에는 첼로 다 해보다가 중학교 때 오보에를 시작했어요. 소리가 달콤하다고 해야 하나, 사람 마음을 흔든다고 해야 하나, 그런 점들이 제게 다가왔지요. 연습할 때는 힘들어도 무대에 서서 연주할 때의 성취감, 박수 받고 주목받는 것들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행복했던 적은 별로 없었어요. 지기 싫어하고 예민한 성격이라 더 스트레스를 받았죠. 그래서 항상 체기가 없던 적이 없었어요. 오보에는 부는 악기라 호흡이 다 느껴지고, 내 마음이 안 좋으면 더 티가 나요. 그래서 지도교수님도 오보에를 연주하기 위해선, 한결같은 평상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 하셨는데 그러기가 쉽지는 않더라고요.
평상심 유지하고 싶어 독일 유학 중에도 마음수련 계속
그랬던 저에게 변화의 계기가 됐던 게 대학교 2학년 때 시작한 마음수련이었어요. 처음엔 한 일주일만 해볼 생각이었는데, 막상 마음을 비워보니까 정말 편안하고 좋더라고요. 그래서 계속하게 되었는데, 마음을 비우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죠. 항상 체하던 것도 없어지고, 쓸데없는 스트레스나 걱정들도 사라지고. 그러다 보니까 점점 연주 실력도 늘고요.
그러다 2007년에 독일 만하임국립음악대학교로 유학 갔을 때였어요. 주눅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한국에선 잘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제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요. 낯선 환경에 언어도 안되고 여러 가지로 힘들 때, 가장 위안이 되었던 곳이 프랑스에 있는 파리 마음수련원이었습니다.
지금은 독일 베를린에도 수련원이 있지만 제가 만하임음대 다녔을 적에는 제가 있는 도시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파리 수련원이었어요. 에펠탑 근처에 있는 수련원인데, 기차 타고 3시간 거리였어요. 그곳에는 한국어 교수님, 직장인, 유학생들 등 수련생들이 많았습니다. 다들 마음을 빼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니 당연히 분위기도 좋았지요. 언제든 가면 맛있는 것도 해주시고 늘 힘을 주시고 수련도 도와주셨어요. 덕분에 힘들고 걸리는 것, 마음에 쌓인 것들, 나의 틀을 버리면서 낯선 환경에 도전할 용기도 생겼고 적극적으로 유학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수련을 하며 정말 제가 마음에 아주 큰 것을 쥐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로 오보에였어요. 오보에가 없는 나는 상상할 수도 없고, 사람들한테 항상 자신감 있는 모습도 오보에를 하고 있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고 좋아해주는 것도 오보에 때문이고…. 그 엄청난 집착이 저를 구속하고 있더라고요. 오보에가 나 자체이니, 인정받기 위해 더 잘해야 하고, 못할까 봐 긴장하고, 불안해하고, 못하면 괴롭고…. 좋아서가 아니라 불안해서 계속하고 있었던 거예요. 오보에를 안 하면 남들로부터 무시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오보에에서 중요한 리드(reed). 입에서 악기로 숨결을 전달해주는 진동판인데, 연주자들이 직접 깎아서 만든다. 리드에 따라 소리의 80%가 좌우되기 때문에, 연습은 쉬어도 리드는 깎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성을 들여 깎는다. 같은 악기지만, 각자 오보에 음색을 갖고 있다고 하는 이유는 리드를 다듬는 마음 등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마음에 따라 음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음악, 명예, 사랑… 다 내려놓았을 때 진짜 음악 즐길 수 있어
진심으로 오보에를 놓아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치열하게 몇 날 며칠을 버렸지요. 그리고 마음에서 탁 놔지는 순간의 해방감이란… 그게 바로 자유더라고요. 음악, 명예, 사랑… 그런 것들을 다 버리고 비웠을 때, 진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지요. 버리면 다 없어지는 것 같지만 세상은 더 큰 걸 주더라고요. 그렇게 크게 한번 나를 넘어서고 나서야 음악을 진짜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무대에서 연주하는 게 180도 달라졌어요. 악기를 하는 그 시간 자체가 너무 소중해지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게 되더라고요.
같은 악보인데도 예전에는 안 보였던 것들도 보였지요. 이 음악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는 아이디어도 계속 나오고요. 그동안 신지혜라는 좁은 마음세계에서 연주했다면, 이제는 그것에서 벗어나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보게 되었으니까요. 연주할 때 예전엔 나 잘하는지 한번 봐줄래? 그런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사람들의 평가에 집착하지 않으니까 몰입도 잘되고 물 흐르듯 연주도 흘러갔습니다.
친구들도 편안해졌다고, 얼굴부터 달라졌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수련을 하면 가장 많이 생기는 것 중의 하나가 집중력이에요.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념들이 없어지니까, 하고 싶은 만큼 마음먹은 만큼 최대한 능력을 다 펼칠 수가 있습니다. 진짜 아무것도 없어야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있다는 말을 많이 실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