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당당한 여자. TV 속에서 나오는 소위 ‘나쁜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후련하고 늘 부러웠다. 나는 항상 친절하다,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 속칭 ‘착한 여자’의 대표 주자였다. 여자는 착실해야 해, 다소곳해야 해, 남들 앞에서는 양보해야 해…. 어린 시절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께 받은 교육은 그랬다. 엄마도 무조건 참으라고 가르쳤고, 나는 그런 엄마의 삶이 싫으면서도 닮아가고 있었다.
드라마 속 ‘나쁜 여자’ 부러워하던 현실 속의 ‘착한 여자’
한 번도 사람들에게 내가 원하는 것, 감정을 솔직히 표출해본 적이 없다. 상대방이 잘못했을 때 화가 나더라도 꾸욱 참고 있다가, 우회적으로 빗대어서 말하면서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늘 사람 대하는 게 공포스러웠고 깊은 관계는 맺을 수가 없었다. 늘 부지런히 살았지만 우울증 같은 것도 오고 삶이 답답했다. 이런 마음들을 다 버리고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러다가 마음수련을 하면서 내가 그동안 쌓아온 마음을 정말로 버릴 수가 있었다. 항상 잘해야 한다,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 삶을 다 빼고 나니 너무 시원했다. 날아갈 거 같았다. 그냥 우주가 나였고, 모두가 다 하나였다. 누구나 완전한 존재였다. 자유로웠다. 온 세상이 내 것이었다. 진짜 행복했다.
그렇게 나를 버려본 후에 나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부당한 상황에서 화가 나면 화도 낸다.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하게 되었고, 솔직하게 부탁할 줄도 알게 되었다. 그러면 상대가 싫어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렇게 솔직하게 다가가니 사람들하고도 더 친밀해졌다.
‘착한 여자’라는 틀 넘어선 진짜 ‘착한’ 여자로 살기
한번은 남편하고 말다툼할 일이 있었다. 애들 성적이 떨어진 게 내가 신경을 쓰지 않아서라는 남편의 말에 솔직히 이야기를 했다. “당신한테 그 말 들으니까 되게 속상하다. 아이가 공부를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는데, 왜 내 탓을 하냐…” 남편도 아차 싶었는지 미안하다고 했다.
애들에게도 할 이야기가 있으면 바로 표현하고, 빙빙 돌려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표현하니 오히려 아이들도 편안해했고, 나도 편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배려를 하고 나눈다. 삶이 행복해졌다.
혹시 나처럼 ‘착한 여자’라는 틀에 갇혀 힘들어하는 분이 있다면, 어린 시절의 성장 환경을 돌아보고 버려보라고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예전에는 나쁜 여자를 부러워했지만, 지금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좋다. 언젠가부터 착한 여자의 이미지가 왠지 무능하고 진상 떠는 여자처럼 됐는데, 착하고 남을 배려하며 나눌 줄 아는 게 뭐가 나쁜가? 이제는 ‘착한 여자’라는 틀도 넘어 진정한 ‘착한’ 여자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