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미인이셨다. 항상 상냥하고 언제나 웃으시는 그런 분이었다. 그러다 내가 7살 때 결핵으로 수술을 하셨다. 의료 사고로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넘긴 엄마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나와 내 동생을 키워야 했고 집안 살림도 혼자 해야만 했다. 엄마는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에 점점 히스테릭해져 갔고 나와 동생은 늘 불안해하며 살아야 했다. 엄마 앞에선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엄마를 미워하는 만큼 불행했던 나
나는 점점 엄마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기 시작했고, 그 표현으로 엄마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엄마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 역시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난 살기가 싫었던 것 같다. 무엇을 해도 기쁘지 않았고 행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황폐해져 갔다. 스무 살이 되면 독립하리라 마음먹었다. ‘이 지긋지긋한 속박을 벗어버리리라.’
드디어 대학에 갔다. 엄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보란 듯이 살겠다고 다짐한 나는 힘을 갖는 게 필요했다. 그래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운동에 열중하면 할수록 어린 시절의 아픔과 그 어둠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한 듯 보였다. 난 엄마를 용서할 수 없었고 엄마와 화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곧 나 자신을 부정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괴로웠고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공부도 하고 돈도 열심히 벌고 살림도 죽을 듯이 했고 아이도 완벽하게 키웠다. 하지만 나 자신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불행했다.
‘이 지옥 같은 마음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마음수련 선택
당연히 결혼생활도 원만하지 않았다. 남편과 많이 힘들었다. 나 때문에 힘들어하던 남편이 함께 수련할 것을 권했다. 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이 지옥 같은 마음을 벗어버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련하면서 내 삶이 얼마나 거짓된 것이었나를 깨닫게 되었다. 남을 위해 한다고 생각한 학생운동은 실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음을 깨닫는 순간 엄청난 구역질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엄마를 미워하면서 살아온 내 삶이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엄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데 수련이 진행되면서 점점 상처받았던 마음이 없어지면서 엄마의 입장이 되기 시작했다. 엄마가 왜 그렇게 예민했었는지 이해되고, 목숨 걸고 우리를 키울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그 절절한 마음이 느껴져 많이 울었다.
내 관념 속의 엄마 모습 다 버리자 진짜 엄마 보여
그러자 엄마와 행복했던 시간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성을 다해 도시락을 싸주고 우리의 옷을 만드시면서 행복해하던 엄마의 모습, 그리고 몸이 아파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우리 남매를 보며 웃으시던 그 시간들. 그러나 그 기억도 버렸다. 행복했던 기억도 내가 만들어낸 나의 마음세계였으므로…. 나쁜 기억이든 행복했던 기억이든 내가 내 중심으로 만들어놓은 가짜이지 진짜 엄마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 거짓의 껍데기를 모두 벗어버리고 나니 엄마에 대한 나의 진짜 마음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진실은 바로 나는 엄마를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논산 메인센터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난 내가 엄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어. 수련하면서 보니까 난 엄마를 정말 많이 좋아하고 있더라구. 엄마를 싫어하고 미워했던 건 내가 나를 속인 거였어.”
태어나서 50년이 되어서야 난 엄마에게 처음으로 말할 수 있었다. 내 진심을…. “엄마, 사랑해….”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엄마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난 후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엄마를 떠올려도 연민이나 미움이 생기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엄마가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무섭지도 불쌍하지도 않은 주어진 당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었다. 연민과 미움은 내가 만들어낸 거짓이었다. 가짜였다. 내가 지금까지 엄마라고 생각한 것은 사실은 내 마음이 만들어낸 가짜 엄마였던 거다. 나는 더 과감하게 더 열심히 엄마에 대한 가짜마음을 지웠다.
오랜 친구처럼 엄마와 수다 떠는 행복
마음이 평온해지며 내 태도도 달라졌다. 전에는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의무적으로 전화하고 마치 빚진 것처럼 ‘엄마에게 잘해야지, 어떻게 하면 엄마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을까’를 강박관념처럼 달고 살았던 내가 더 이상 엄마를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엄마로부터 해방되었고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내가 달라지자 엄마도 거짓말처럼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를 못마땅해하시던 엄마가 너그러워지시고 나를 지지해 주시게 되었다. 늘 부정적인 말로 나를 힘들게 하곤 했는데 지금은 어떤 이야기든 경청해 주신다.
지난번엔 엄마와 오래도록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치 친구처럼. 엄마가 하는 말들, 행동들이 너무 귀엽고 순수하게 느껴진다. 마음수련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 평생 엄마를 원망하거나 동정하면서 힘들게 살았겠지…. 더구나 엄마에 대한 감사함과 존경하는 마음은 가질 수도 없었겠지. 마음수련은 이렇게 내게 진짜 엄마를 찾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