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학년 때였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이후 한 후배와 점차 좋아하는 감정이 생겼다. 후배의 행동 하나하나가 내가 원하는 이상형과 비슷했다. 그 후배도 내게 호감이 있어서 사귀게 되었다. 우리는 닭살 커플로 유명했다. 어딜 가나 항상 붙어 다녔다. 하지만 얼마 후 번뇌가 시작됐다. 군 입대 때문이었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지옥 같았던 군대생활
군에 입대해서도 정성껏 편지도 쓰고 전화도 많이 했다. 입대 5주 만에 100통을 받았고, 전화는 하루에 30분씩은 꼬박꼬박 하곤 했다. 항상 함께 있는 것 같았다. 점차 나는 여자친구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3월 즈음이면 학교엔 신입생과 복학생들로 붐빈다는 생각에 불안감은 점점 커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전화할 때마다 싸우기 시작했다. 여자친구는 지쳐갔고, 급기야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다시 붙잡고 싶었지만 어찌할 바를 몰랐다. 군 생활 하루하루가 정말 지옥 같았다. 한편으론 좀 더 잘해줄 걸 후회와 자책도 컸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자 여자친구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니가 뭔데 날 차는 거야’라며 비난하고 미워했다.
한동안 만나지 않으니 원망하는 마음도 차츰 가라앉아 전역을 앞두고 다시 만났다. 잠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헤어져 있을 때 힘들었던 게 생각나 잘해주지를 못했고, 다시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기대하고 집착하는 마음이 크다보니 자꾸 부딪쳤던 것
나는 입대 전에 잠시 한 적이 있던 마음수련을 찾았다. 여자친구와 지냈던 기억들을 버려나갔다. 데이트하면서 좋았던 것부터 헤어지면서 가슴 아팠던 기억과 마음까지도. 그러자 헤어지고 나서 왜 그렇게 아파했는지 알게 되었다. 이미 헤어졌는데도, 내 마음엔 아직 그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잊어야지 하면서 잊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붙잡고 끌려다녔다. 만날 땐 사랑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그것은 집착일 뿐이었다. 여자친구의 본래 모습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이상형에 맞추려고만 했었다. 뚱뚱하면 살 빼라 했고, 머리 모양이 맘에 안 들면 바꾸라고 강요했었다. 정말 단 한 번도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없었다.
군대 가서 그렇게 싸운 것도, 기대고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힘든 군 생활로 여자친구한테 많이 의지하고 싶었지만, 여자친구 역시 나에게 기대려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서로 부딪쳤다. 좋았던 순간과 힘들었던 사연들을 버리자 마음 한구석이 편해졌다. 내 마음이 편해지니 그 어떤 순간을 떠올려도 동요가 없었다.
여자친구는 내 마음 비쳐주는 거울
다시 그 후배를 만났을 때 우리는 그지없이 편안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수련하기 전에는 여자친구의 미니홈피에 들어가거나, 전에 주고받았던 편지를 읽으려고 하면 두려움이 일었다. 다른 사람들과 웃으면서 사진 찍은 모습을 보면 나 없이도 잘 지낸다는 생각에 서운했고, 편지를 보면서도 그때는 이렇게 좋았는데…, 하면서 비교하고 힘들어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런 마음 없이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신기했다. 연애를 하면 누구나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설렜던 첫 만남일 것이다. 전엔 그때의 기억이 너무 강한 나머지, 그때와 같지 않음을 비교했는데, 지금은 만날 때마다 처음 만나는 것처럼 즐겁다. 무언가를 해줘도 바라는 마음이 없고, 더 잘해주려고 노력한다.
전에는 사랑이란 ‘나만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누군가 나에게 사랑에 대해 묻는다면 ‘내 자신처럼 상대를 아껴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대하는 것이다. 애인에게 하는 것만큼 부모님 말씀에도 귀를 기울이는지, 이웃에게 성의를 다하는지, 상대의 입장이 되는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그래서 내 여자친구는 나의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