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내 별명은 ‘불’이었다. 앞에 나와서 발표할 때면 얼굴이 빨개진다고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학교 선생이 되어서도 변치 않았던 소심함을 마음수련 후 버리게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나에겐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스스로 열등감 속에서 허우적대며 아이들을 차별하던 선생님
대학시절, 갑자기 세상사가 허무해서 종교생활을 시작했다. 학교생활, 종교생활 모두 열심히 하며 잘 산다고 자부해 왔다. 하지만 내면의 갈등을 치유하기에는 불가능했다.
겉으로는 남을 잘 이해하고 잘 사는 것 같았으나 혼자서는 우월감과 열등감 속에 힘들어했고, 가족들에게 짜증만 부리고 있었다.
예전에 중3 여학생 담임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너무 산만하고 부정적이라 여간 힘들지 않았다. 합주부에서 잘린 학생들과 자기들끼리 세력을 형성하려고 서로 싸우고 하여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몇 년 후 그 문제 학생과 어머니를 길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 너무나 반가워했지만, 나는 그때의 모습이 떠올라 무표정하게 인사만 하고 그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또 한 번은 버스 안에서 한 여학생이 휴대폰으로 계속 떠들면서 남자친구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 하고 쳐다보니 우리 반 졸업생이었다. 난 속으로 공부도 못하는 게 남자는 알아가지고, 하며 비웃어 버렸다.
그 당시 나는 영어신문도 구독해 읽고 토익시험도 수시로 치면서 교과에만 치중했지, 진정으로 사춘기 시절 학생들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교과 성적이 낮은 학생이 나와 상담을 하고 싶어했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거절했다. 그런 학생들을 은근히 무시하고 아주 반듯한 학생만 쳐다보면서 만족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들은 졸업해서 스승의 날이라고 찾아왔지만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이제 화낼 일 없어
마음이 힘들어질 때, 동료 교사로부터 권유받고 시작한 마음수련. 내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남들이 보는 나와 내 마음속의 나는 일치가 안 되었고, 항상 마음속으로 뭔가를 시비분별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수련 후 우연히 지난번 버스에서 만난 그 제자를 또 만났다.
이번에는 둘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전공은 뭐니? 공부하기 힘들지 않니? 남자친구는 있니?…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 제자가 너무 괜찮아 보였다. 얼굴만 반반하고 머리는 텅 비어 보였던 그 아이는 실제로는 미래를 준비하는 어엿한 숙녀로 커가고 있었다.
그 제자도 중학교 때 공부 열심히 안 한 걸 후회한다는 말도 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로 행복한 만남을 가졌다. 내 마음이 변하니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 있는 것이다.
올해 학교를 옮겨 중3 남학생을 맡고 있다. 이번 3학년들이 별나다고 야단들이다. 교과시간에 큰소리치고 장난치고, 야단치면 반항하고…. 예전 같으면 무례한 녀석들이라고 무시하면서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혼내고 지도할 뿐 그 아이의 본래는 우주임을 잘 알고 있다. 잘못된 행동은 지적해주지만 나쁜 감정은 남지 않으니 서로 편한 마음으로 잘 지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