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효과

아이들과 화해하고 화목한 가정 이뤘습니다

강영성씨 가족 이야기

컴퓨터 게임에 빠져 공부를 등한시하는 아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몹시 받았다는 아빠 강영성 씨. ‘인생은 부지런히 살아야 보람차다’는 신조로 살아온 강영성 씨는 가족들이 태만해 보이는 꼴을 용납할 수 없었다. “내처럼만 열심히 살아라”는 강요에 아들과 딸은 냉랭했고, 이를 바라보는 아내 조부덕 씨도 편안할 날이 없었다 한다. 틀 세고 딱딱하게 굳어 있던 아버지를 부드럽게 변화시킨 건 마음수련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 이들 가족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까지.

집에 들어오면 인상부터 쓰던 아빠

아들 우리 집이 정말 화목해지긴 했나 봐요. 이렇게 취재도 나오고.(웃음)

아빠 이게 다 우리 아들 덕분이다. 니 덕분에 우리 식구가 모두 마음수련을 시작했고 아빠도 많이 바뀌었잖니.

엄마 당신은 얼굴부터가 확 펴졌어. 전엔 집에 들어오면 인상부터 썼잖아.

아빠 전에야 당신 마음에 얼마나 안 들었겠어. 무슨 말 한두 마디만 하면 ‘됐다, 그만해라’ ‘알았다, 그리 안 할게. 끝!’ 했으니까.

엄마 ‘그리 안 할게’도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게 뭐 있나 하면서 자기가 잘못한 걸 인정한 적이 없었지.

아빠 맞다, 맞다. 내는 오십 평생 살아오면서 무조건 열심히 사는 게 제일 잘 사는 거라 생각했어.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았으니까 잘못한 게 없다 생각했지.

엄마 당신 인생의 목표가 ‘열심히’였잖아. 내가 당신하고 결혼하고 일요일 날 한 번도 집에 있는 걸 못 봤어. 하루에 세 번 정도는 나갔다 들어와야 하고, 쉴 새 없이 움직여야, ‘보람찬 하루였다’ 했잖아.(웃음)

아빠 한 시간이라도 몸을 바닥에 붙이면 보람찬 하루가 아니었지.(웃음)

아빠랑 얘기하면 TV와 대화하는 것 같았어요

아들 내가 다섯 살 때, 처음으로 배운 말이 ‘보람차다’였어요. 아빠가 하도 그러니까 제가 보람차다가 뭐야? 물었더니, ‘하루를 억수로 한 일 많게!’라고 설명해주신 게 기억나요. 그래서 저도 맨날 일기장에 ‘오늘도 보람찬 하루였다’라고 쓰고.(웃음)

아빠 아빠도 할머니 영향을 많이 받았어. 할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농사를 지었는데 내내 일하고도 한 번도 아프다고 드러누운 적이 없으셨어. 그걸 보면서 나도 모르게 열심히 살아야겠다가 몸에 밴 거지.

엄마 옛날엔 먹고사는 게 제일 큰일이었지만 요즘 애들은 원하는 게 다르잖아. 내가 당신은 애들한테 너무 해주는 게 없다고 하면 첫마디가 “내가 할 일 안 하는 게 뭐 있노. 일 열심히 해서 돈 벌어주는데” 했잖아. 항상 12시 넘어서 들어오고, 일찍 들어오는 날은 자기 공부하고, 애들하고 같이 놀아준다는 거 자체가 없었으니까, 나는 그게 불만이었던 거라.

아들 저도 아빠를 별로 안 좋아했어요. 같이 있으면 불편하니까 밥도 잘 안 먹고, 용돈 달라는 소리도 잘 못했어요.

아빠 그래. 니들하고 진짜 오순도순 이야기해 본 적이 없던 거 같다. 때가 되면 알아서 할 건데 그걸 못 참아서 이래라 저래라 야단만 쳤지. 니 중학교 2학년 때인가 아빠하고 대판 싸운 거 기억나나?

아들 그때가 학원 다니다가 가출했을 때였잖아요.

아빠 아빠는 중학교 때는 공부해야 된다는 개념이 딱 들어 있었거든. 근데 공부 안 하지, 컴퓨터 게임도 많이 하지, 야단치고 혼내도 바뀌지 않으니까, 아빠도 힘들어서 퇴근하기가 싫었어. 집에 오는 게 꼭 감옥소에 들어가는 기분이었지.

아들 저도 아빠가 집에 오는 게 싫었어요. 배가 좀 차가지고 깨작깨작 먹으면 아빠가 밥상 엎으면서 “왜 밥을 그래 먹노!” 하고…. 제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로 혼내고 화내시니까요. “왜 꼭 그래야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빠랑 대화하면 TV하고 얘기하는 것 같았어요. 대화가 안 통하니까.

아빠 다행히 그 무렵에 마음수련을 하게 됐지. 엄마가 잘 가는 미장원 원장님이 니가 오락에 빠져 있다고 하니까 청소년 마음수련 캠프 보내라 한 거야. 근데 부모부터 해봐야 더 좋다고 하기에 아빠도 했지. 수련을 해보니까 아빠가 정말 잘못한 게 많더라. 한 번도 니들이나 엄마 말을 수용한 적이 없었어. 미안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지.

틀에 매여 사는 아빠는 자신도 괴롭고 주위도 괴롭히기 마련

엄마 당신 바뀐 거 보고 나도 너무 놀랐어. 나보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라고 하고, 애들한테 너무 해준 게 없다 하고.

아빠 수련하고 처음 한 달 동안은 정말 마음이 편안하대. 근데 또 아들이 게임을 하면 속이 디비지고, 딸내미까지 친구하고 문제가 있어 학교를 휴학하겠다고 하니까 마음수련을 계속 안 할 수가 없더라고.

아들 아빠를 이해하면서도 나한테 강요하는 게 싫었어요. 저도 수련하면서 아빠에 대한 마음 버리면서 울기도 했는데, 아빠에 대한 연민 같은 게 느껴져서였어요. 아빠가 틀에 매여 사는구나, 그래서 아빠도 괴롭고 주변 사람도 괴롭구나, 하고요.

아빠 그래, 맞다. 작년에는 너하고 아빠하고 엄청 다퉈서 결국 문짝 다 부숴지고, 엄마가 보기에 이러다 진짜 아들하고 애비하고 원수가 되겠다 싶어 니가 원룸 구해서 집 나갔잖아. 그러고 나서 아빠도 얼마나 괴로웠는지 아나. 그렇게 불같이 성질을 내고 보니까 너무나 내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이대. 진심으로 제대로 버린 게 없었구나 싶었어. 그때부터 수련을 정말로 열심히 했어. 그랬더니 어느 순간에,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나로 인해서 비롯됐다는 걸 깨닫게 됐지. 그래, 우리 가족부터 100% 수용해보자 다짐을 하고, 일단 너희 일에 간섭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엄마 그래도 아빠가 아들한테 얼마나 공 많이 들였노. 아침 먹다가 아들 좋아하는 거 있으면 엄마한테 그것 좀 싸라 해서 아빠가 차에서 먹이고, 학교도 데려다주고. 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잖아. 그러더니 니가 거짓말같이 게임 안 하고 올해 2월부터 공부하겠다 했잖아. 각자가 자신을 돌아보는 힘이 생긴 거지.

아빠의 변화에 공부 결심하고, 게임도 휴대폰도 다 끊은 아들

아들 이제 게임 그만하고 공부해야겠다 결심했을 때 그냥 눈물이 났어요. 왜 울었는지 몰라도 속으론 기뻤어요. 제가 공부 안 해도 겉으론 되게 편안해 보이니까 친구들이 속세를 떠난 도인 같다 했거든요. 근데 어느 날부턴가 쟤들은 저리 열심히 하는데 나는 뭐하고 있지 이런 생각도 들고.

아빠 공부하겠다 하고는 휴대폰도 컴퓨터도 다 끊어버렸잖아. 집에도 다시 들어오고.

아들 나갈 땐 아빠 얼굴 죽을 때까지 안 볼 거다 하고 나갔는데, 아빠도 바뀌고 있고, 올해 아빠가 화내는 건 한 번도 못 봤으니까요. 밤늦게 컴퓨터 하다 아빠한테 들켜도 그냥 들어가라고만 하시고. 아빠가 옛날엔 전부 부정적이었으면 요즘은 항상 긍정적인 거 같아요.

엄마 태규가 어느 날 우리 가족 중에 아빠가 제일 힘들겠다고 한 거, 당신 알아요? 자기는 공부하기 싫으면 안 하고, 엄마도 우리 보내고 나면 맘대로 할 수 있는데 아빠는 우리를 위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근해야 되고, 돈 벌어야 한다고 하면서.(웃음)

아빠 우리 아들이 그런 소리를 했나?(웃음)

아들 아빠는 보면 은근히 정이 많으신 거 같애요. 친척 분들이 어려우면 아빠가 많이 도와주시잖아요. 항상 엄마도 아빠는 저 작은 몸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책임지냐고, 그런 말을 많이 하셨어요. 그런 거 생각하면 아빠도 힘드니까 우리한테 신경질 낼 수도 있는 건데, 그걸 이해 못 했던 게 반성이 됐어요.

아빠 수련하면서 우리가 다 서서히 바뀐 것 같애. 당신도 그랬잖아. 세상 살면서 어떻게 우리가 바라는 대로 애들이 다 그렇게 클 수 있겠냐고. 애들한테 너무 바라지 말자, 그런 얘기를 들으면 아, 맞다 내가 애들한테 너무 집착해서 내가 바라는 사람으로 키우려고 했구나, 정말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대.

엄마 내도 참 잘못한 게 많았지. 당신하고 사이가 안 좋다 보니까 애들한테 당신과의 자리를 못 만들어준 거 같애. 늘 당신은 바쁘니까 하고 제외시켰으니까.

아들 전엔 대학 갈 생각이 없어서 공부도 안 했는데 요즘은 목표가 생기니까 좋아요. 한번은 나의 장점과 단점을 나열해 보는데, 장점은 못 적겠더라고요. 그때 내가 진짜 안될 놈이구나,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수련 후,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 우리 가족

엄마 자신을 돌아보는 힘이 생긴 거지. 전엔 지겨워서 일부러 학교에서 잤는데 지금은 잠 올까봐 밥도 조금 먹고 수업 다 듣고 한다며. 공부한 지 한 달 만에 성적도 많이 올랐고.

아빠 얘길 들어보니까 아빠가 자꾸 내를 돌아보듯 너도 똑같이 흘러갔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잘못인지 스스로 찾고 해결하려 하고.

아들 아빠가 매사 긍정적이 되니까 집안 자체가 화목하게 돌아가잖아요. 옛날엔 불화의 원인은 아빠라고 생각했는데.(웃음)

아빠 맞다. 아빠가 바뀌니까 모든 게 순리대로 되잖아. 아참, 전에 니가 고3이라고 보약을 지어줬는데, 너는 괜찮다고 아빠 힘드니까 아버지 주라는 얘기 엄마한테 들었을 때, 아빠가 얼마나 짠했는 줄 아나.

아들 약 먹기 싫어서 그런 건데요.(농담^^)

아빠 하하하. 그 말 들었을 때 아빤 정말 행복했다. 우리 아들이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열리고 있구나 싶었어.

엄마 언제부턴가 아들이 아빠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 전에는 무늬만 가족이었잖아. 근데 수련하고 나서는 우리가 진심으로 가족이 됐다는 게 너무 고마워.

아빠 알다시피 아빠가 얼마나 잘난 척하고 자존심 강하고 남한테 굽히는 거 억수로 싫어했나. 그런 내를 니들이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해준 거라. 요즘 나는 진짜 근심 걱정이 없고, 누가 조금만 우스갯소리 하면 그냥 웃음이 나고 그래. 요즘은 환자들이 “같은 사람 맞습니까?” 그런다니까. 전엔 사람들이 “저 한의원 원장은 완전 얼음이다. 사람 보고 가지 말고 병 나으러만 가라”고 했다잖아.

엄마 맞어. 당신 진짜 많이 달라졌어.

아들 다 제가 복이 많은 아이라 그런 거예요.(웃음)

아빠 그래. 니가 복덩이다. 엄마 아빠 마음수련도 하게 해주고.(웃음)

“이젠 아빠를 닮고 싶어요”

아빠는 집이 감옥소라 했지만, 내겐 아빠가 들어오면 집이 감옥소였다. 아빠가 오면 눈치를 봤다. 아빠는 우리한테 별로 신경을 안 썼다.

우리한테 화를 내고 나면 아빠도 속상해서 술 마시고 미안하다 잘못했다 하셨다. 하지만 그럴 때가 제일 싫었다. 그런 일을 안 만들면 되지 싶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불쌍하기도 했다. 나 역시 아빠에 대해 무관심했던 거 같다. 근데 지금은 아빠가 좋다.

마음수련 후 많이 바뀌셨기 때문이다. 전에는 무조건 “어디를 같이 가야 된다!”는 식으로 일방적이셨는데 지금은 “어디 갈래?” 하고 물어오신다. 전에는 열 마디 중에 아홉 마디는 ‘~하지 마라’였다. 컴퓨터 하지 마라, 학교 늦게 가면 안 된다, 옷부터 머리까지 아빠 맘에 들지 않아 하셨다. 근데 이젠 항상 ‘그래라’ 하신다.

강태규 군. 2005년 청소년 마음수련 캠프에서 마음수련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