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내 모습이 싫었던 이유
난 거울 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아서였다. 편안하고 밝고 안정된 얼굴이 아닌 경직되고 화가 난 듯 무서워 보이는 내 얼굴을 거울을 통해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웃을 일이 있을 때마저 활짝 웃지 못하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굳어져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나를 느끼게 될 때는 그것이 너무도 싫고 슬펐다. 마음이 힘들면 얼굴이 새까매져서 아무리 화장을 해도 감출 수 없었다.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을 봐도 산다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기보다는 그 삶의 무게가 너무도 벅차고 힘들어 보였다.
그렇게 살다가 삶을 마감하고 결국엔 없어지는 게 인생이라면 왜 신은 인간을 만들어서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원망도 많이 했다.
인간이 이 세상에 나왔을 때는, 분명 이렇게 살다 가는 게 다는 아닐 텐데, 진정한 행복과 사랑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또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건지….
세상 어디에도 답은 없는 것 같았다. 무엇을 해도 항상 그 끝에 찾아오는 건 알 수 없는 쓸쓸함과 허무함뿐이었다.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내 마음속에 갇힌 만큼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에게 세상이란 창밖을 통해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대상, 아련하고 멀고 먼 남의 이야기였다.
태교를 계기로 시작한 어리시절 트라우마 극복
“언니, 힘들어 보여. 마음수련 해봐. 해보니까 좋네.”
동생이 마음수련을 권했다. 좋다는 그 말에 끌려서 바로 지역센터에 등록해서 명상을 시작했다. 등록 후 며칠이 지나 임신 사실을 알았다. 유아교육을 공부했던 나는 태교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허무함과 쓸쓸함이 턱 밑까지 차올라 있는 엄마의 우울함이 뱃속의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이를 위해서도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는 거였기에 나는 명상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마음수련을 통해 발견한 어린시절 트라우마 뿌리
처음엔 막연히 우울함의 원인이 엄마의 죽음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평생 너무도 힘들게 사신 엄마가 이제 좀 살 만하니까 돌아가셨을 때, 사는 게 뭔가, 세상에 나왔으면 행복하게 잘 살고 끝을 내야 하는데 이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인생 자체에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 가정을 가지면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싶어 결혼도 했지만 내가 상상했던 결혼생활은 아니었다. 나와는 너무 다른 남편과의 부딪침 또한 점점 극에 달해 갈 뿐이었다.
이런 게 인생이라면 정말 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한계를 느끼고 있을 때 마음수련 명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명상을 통해 이 우울함의 원인은 엄마의 죽음 그 이전, 그보다 더 훨씬 이전부터 뿌리 깊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폭력적인 오빠로 인해 불우했던 어린 시절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트라우마의 원인
나는 1966년 전라도 광주에서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아이 셋을 두고 사별하신 아버지가 재혼으로 맞은 두 번째 부인이 나의 엄마다. 아버지의 첫번째 부인은, 오빠를 낳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오빠는 그 충격이 커서인지, 엄마가 없어 마음을 못붙이며 자라서인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 안 가고 걸핏하면 집을 나갔고, 커가면서는 더욱 폭력적이 되었다. 술 먹고 와서 다 때려부수는 건 부지기수였고, 엄마에 대한 원망과 미움은 상상을 초월해,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도 많았다.
오빠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었다. 오빠가 집에 오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조차 제대로 못 쉬었다. 제일 힘들었던 건 엄마가 이 집을 떠나려다가도 당신 자식들 때문에 다시 돌아왔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엄마가 너무도 불쌍하고 그러다가 언젠가는 엄마가 진짜로 사라질까 봐 무서웠다.
엄마는 나를 임신했을 때 내가 아들인 줄 아셨단다. 오빠가 아들 역할을 못하니 아들을 간절히 바랐다가 낳고 보니 딸이라 실망이 크셨다. 게다가 첫째 언니는 돌 전에 기저귀를 뗐는데 나는 느리고 잘 가리지 못해 야단을 많이 맞았다고 한다.
언니들에 비해 똑똑하고 야무지지 못하다고 비교당하고 야단을 맞아서였을까, 나는 늦게까지 오줌 가리기도 잘 못했다. 밤에 잘 때면 실수할까 봐 겁나고 무서웠고, 자다가는 그 두려움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실례를 했다. 스스로 위축되고 자신감이 없어졌던 것 같다.
한번은 초등학교 가기 전 언니가 공부를 가르쳐줬는데 계속해서 틀리자 그걸 보고 있던 엄마가 심한 말을 했다. 그 순간부터 나 스스로 난 멍청하고 쓸모 없고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어버린 것 같다.
엄마의 그 부정적인 말들이 바로 내 인생 자체를 지배했다는 것을, 명상을 하며 이해하게 되었다
무엇을 하든 야단맞으면 어떻게 하지,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에 항상 사로잡혀서, 스스로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고 먼저 포기부터 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늘 불안감과 열등감에 휩싸여 있던 나. ‘난 못할 거야’ 하며 늘 위축됐던 내 모습은 그 모든 어린 시절의 기억들로 인해 형성된 나였다.
마음 비운 만큼 사라져간 우울과 불안의 뿌리
마음 비우기를 통해 시작된 치유와 변화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어린 시절, 엄마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지 못해서 너무도 슬펐던 나, 오빠를 보면 늘 불안하고 무서웠던 마음, 엄마에 대한 원망 그리고 연민.
이 모든 마음들을 열심히 버리고 또 버리고 버렸다. 남들보다 늦어도 좋았다. 남들이 백 걸음 갈 때 나는 한 걸음 가겠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마음수련을 해나갔다. 그 결과 나에게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힘든 마음이 버려질수록 그 마음이 옅어지고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고, 어떻게 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았던 미움과 원망이 떠나고 대신 이해와 미안함이 자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은 불행하다는 마음에 갇혀 버린 채 그 한과 상처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던 오빠. 그때 누구라도 정신적인 치료와 상담을 도와줬더라면 오빠도 평범하게 살았을 텐데….
사람은 배워야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다고 자식 교육을 위해, 매일 서너 시간씩밖에 못 주무실 정도로 생활력이 강하셨던 엄마. 하지만 큰아들 농사를 못 지었다는 죄책감에 늘 시달려야 했었다. 나머지 자식들이 위안이고 자부심이었을 엄마 입장이 되어보니, 그 세월을 지켜주신 엄마가 너무도 고맙고 감사했다.
하지만 나는 내 마음을 이해하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내가 받고 싶은 걸 주지 않는다고, 엄마한테 또 다른 비수를 꽂으며 살아왔었구나…. 엄마한테 미안했다.
좀 더 노력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열등감 뒤에 숨어 늘 자포자기하고 항상 주변에 바라기만 했던 날들도 떠올랐다.
편안해진 엄마 밝게 자란 딸, 마음수련은 최고의 태교
결국 나는 어릴 때 사진처럼 찍어 놓은 마음들의 노예가 되어 평생을 그렇게 나만 보호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나만의 마음세계 속에 갇혀 산다는 것이 정말 무서운 것이구나 싶었다.
어떤 마음이든 한 번 그렇게 입력이 되고 나면 비슷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그 속으로 들어가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마음들을 버릴 수만 있다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 내 속에 켜켜이 쌓여진 마음들이 깨끗이 비워진다는 것은, 곧 나의 삶이 자유로워지고 행동이 편안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처음 마음수련을 시작했을 때의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지금의 나를 보면 놀랍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하고 사람들하고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나에게서는 옛날의 그 어두웠던 모습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딸에게 전해진 밝은 에너지와 행복의 비결
참, 딸아이의 이야기도 해야겠다. 어느덧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는 자기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가 마음을 비워서인지 참 밝고 씩씩하다. 친구들이나 선생님과의 관계도 좋고 자기 일은 척척 알아서 하니, 마음수련은 정말 최고의 태교이지 않는가.
누구나 행복을 바란다. 하지만 자기 마음이 있는 한 행복은 너무나 막연하다. 그 마음이 참으로 내려놓아질 때 찾아지는 것이 진짜 행복이다.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고, 거울 보기를 두렵지 않게 해준 이 마음수련은, 진정한 행복과 자유의 시작이라고.
최심진 님은 1966년 전남 광주에서 2남 6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이십대까지 감기를 달고 살고 결핵을 비롯해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렸지만 현재는 병원에 가본 지가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님은 마음수련을 통해 인생의 깊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와, 몸도 마음도 편안한 날들을 보내는 것에 대해 감사를 전합니다.